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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역사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 브랜드 역사 | 지금 공식 명칭은 '생로랑' 인 것

by 디오모 2024.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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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1961년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과 그의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é)가 설립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로,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패션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왔습니다.
특히 패션과 사회적 변화를 연결하며 당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 창립과 혁신적인 시작 (1961년~)

입생로랑의 첫 컬렉션은 전통적 패션의 틀을 깨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당시 여성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해방을 제안하며,
패션을 통해 시대정신을 반영했습니다.
예를 들어, 1966년 그는 여성용 턱시도 "르 스모킹(Le Smoking)"을 선보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여성들이 남성의 상징적 의상을 입는 것이 그때로선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고,
이는 페미니즘 운동과 맞물리며 여성의 자아 표현 수단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2. 패션과 아트의 결합: 몬드리안 드레스 (1965년)

1965년, 입생로랑은 몬드리안 드레스를 선보이며 예술과 패션의 결합을 시도했습니다.
네덜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추상화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이 드레스는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패션과 아트가 만나는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드레스는 오늘날까지도 입생로랑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브랜드의 창의적 DNA를 잘 보여줍니다.

3. 'Rive Gauche' 라인의 탄생과 패션의 대중화 (1966년)

1966년, 입생로랑은 고급 패션의 대중화를 목표로 한 레디투웨어 라인 'Rive Gauche (리브 고슈)'를 론칭했습니다.
이는 패션 브랜드가 고급 오트 쿠튀르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다가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혁신적인 시도였습니다.
특히 파리 생제르맹 거리에 'Rive Gauche' 매장을 오픈하면서,
패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4. 카트린 드뇌브와의 아이코닉한 파트너십 (1970년대)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는 입생로랑의 뮤즈로,
그녀가 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 1967)에서 입고 나온 의상은 입생로랑의 대담한 디자인을 잘 보여줍니다.
드뇌브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입생로랑과 협력하며,
브랜드의 우아함과 프렌치 시크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 둘의 파트너십은 입생로랑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5. 은퇴와 브랜드의 전환기 (2002년 이후)

2002년, 이브 생로랑은 은퇴하며 패션계에서 물러났지만,
브랜드는 계속해서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톰 포드(Tom Ford)와 에디 슬리먼(Hedi Slimane) 같은 디자이너들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브랜드의 방향성을 이끌며,
새로운 디자인과 감성을 더했습니다.
특히 에디 슬리먼은 브랜드명을 ‘생로랑(Saint Laurent)’으로 단순화하고,
현대적인 스타일을 도입해 젊은 세대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과 대담한 혁신을 통해 패션계를 이끌어온 브랜드입니다.
여성용 턱시도와 몬드리안 드레스 같은 아이코닉한 디자인, 카트린 드뇌브와의 인연은 입생로랑의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였으며,
오늘날에도 독창적이고 우아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패션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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