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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역사

까르띠에(Cartier) 브랜드 역사 | Jeweller of Kings, King of Jewellers

by 디오모 2024.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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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Cartier)는 1847년 프랑스 파리에서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Louis-François Cartier)에 의해 설립된 세계적인 럭셔리 주얼리 및 시계 브랜드입니다.
까르띠에는 "주얼러의 왕이자 왕들의 주얼러(Jeweller of Kings, King of Jewellers)"라는 명성을 얻으며,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주얼리 하우스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 창립과 초기 역사: 1847년

까르띠에의 역사는 1847년,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가 자신의 스승이 운영하던 주얼리 워크숍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주얼리와 시계를 제작하며 명성을 쌓아갔고,
그의 작품은 빠르게 파리 상류층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사회에서 점차 인기를 얻은 까르띠에는 주얼리 디자인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1874년, 루이-프랑수아의 아들 알프레드 까르띠에(Alfred Cartier)가 가업을 이어받았고,
그의 세 아들 루이(Louis), 피에르(Pierre), 자크(Jacques)는 까르띠에를 국제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세 형제는 각각 파리, 런던, 뉴욕에 지사를 설립하며 까르띠에의 글로벌 확장을 주도했습니다.

2. 까르띠에의 글로벌 확장

루이, 피에르, 자크 세 형제는 까르띠에의 국제적인 확장을 이끌었으며,
이를 통해 까르띠에는 유럽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루이 까르띠에는 창의적인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법을 통해 브랜드를 더욱 고급화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까르띠에는 현대적인 스타일과 기술을 결합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고,
파리의 문화적 중심지인 방돔 광장(Place Vendôme)에 1899년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습니다.



피에르 까르띠에는 뉴욕에서 브랜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미국의 사회적 엘리트들 사이에서 까르띠에의 명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자크 까르띠에는 런던에서 영국 왕실과의 관계를 구축하며 까르띠에를 유럽에서 더욱 확고한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3. 혁신적인 디자인과 상징적인 작품

까르띠에는 주얼리 디자인에서 여러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1904년, 루이 까르띠에는 비행사이자 친구였던 알베르토 산토스-뒤몽(Alberto Santos-Dumont)의 요청에 따라 "산토스(Santos)"라는 이름의 손목시계를 디자인했습니다.
이 시계는 비행 중에도 쉽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된 최초의 현대적인 손목시계로,
이후 까르띠에의 상징적인 모델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까르띠에는 1914년 "팬더(Panther)" 모티브를 처음으로 주얼리에 사용했습니다.
이 디자인은 이후 까르띠에의 상징이 되었으며,
1940년대에는 팬더 모티브를 사용한 주얼리와 시계가 더욱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팬더 디자인은 강인함과 우아함을 상징하며,
까르띠에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잘 보여줍니다.

※"호프 다이아몬드(Hope Diamond)"와 "까보숑 루비(Cabochon Ruby)"

까르띠에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1910년대에 피에르 까르띠에가 미국의 소셜라이트 에블린 월시 맥린(Evalyn Walsh McLean)에게 "호프 다이아몬드(Hope Diamond)"를 판매한 사건입니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45.52캐럿의 진청색 다이아몬드로,
불운과 저주를 불러온다는 전설이 있는 보석이었습니다.
피에르 까르띠에는 이 다이아몬드를 화려하게 세팅한 후 맥린에게 판매했고,
그녀는 이 다이아몬드를 애용했습니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이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Institution)에 기증되었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1926년에 일어났습니다.
인도의 마하라자 파티알라(Maharaja of Patiala)가 파리의 까르띠에를 찾아와 자신이 소유한 보석들을 사용해 새로운 주얼리 세트를 제작해줄 것을 의뢰했습니다.
이 주문은 까르띠에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개인 주문 중 하나였으며,
수많은 다이아몬드와 보석이 사용된 "파티알라 네크리스(Patiala Necklace)"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네크리스는 까르띠에의 장인정신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주얼리 역사에 남아 있는 전설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4. 현대의 까르띠에: 전통과 혁신의 조화

오늘날 까르띠에는 리치몬드 그룹(Richemont Group)에 속해 있으며,
주얼리뿐만 아니라 시계, 액세서리, 향수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까르띠에는 전통적인 디자인과 기술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반영한 새로운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까르띠에는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까르띠에는 전 세계의 예술과 문화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까르띠에 현대미술 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을 통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은 현대미술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창의적인 작업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까르띠에는 1847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이래로,
주얼리와 시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진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주얼러의 왕이자 왕들의 주얼러"라는 명성을 얻으며,
유럽 왕실과 귀족들, 그리고 전 세계의 엘리트들 사이에서 사랑받아왔습니다.
혁신적인 디자인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까르띠에는 팬더 모티브, 산토스 시계, 파티알라 네크리스와 같은 상징적인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현대에도 까르띠에는 전통과 혁신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며,
럭셔리 주얼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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